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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 국가고시, 그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vegandent 2014. 1. 17. 10:28
오늘은 후배들이 국가고시를 치는 날이다.
현재 입원 중이라 어디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멀리서 응원만 할 뿐이라 후배들에게 힘이 되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물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면 다들 합격할 것이기 때문에 걱정은 없지만, 90%를 상회하는 합격률을 보이는 시험에서 혹시라도 내가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심리적인 부담감은 사실 상상을 초월한다.

국시 100일 기념 파티


국시 약 30일 남기고 공부 플랜. 텅빈 머릿속을 반영하는 듯.


수험기간에 사용한 형광펜!



국가고시는 당일 끝나지만 시험을 앞두고 2박3일간 호텔에서 합숙을 하며 마지막 총정리를 하는 기간이 있는데, 아마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열심히 공부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국가고시를 준비하며 임신한 아내도 돌봐줘야 하고, 출산을 대비해 집도 알아보고 이사도 해야 했으며, 시험 약 2주 전에는 이쁜 딸이 세상에 나와 산후조리원에서 출퇴근 하는 등 공부 외적으로 신경을 써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어 매우 위축되고 불안한 수험 생활을 했었다. 함께 공부한 스터디 형들의 도움과 떨어지면 두 모녀가 손가락 빨아야 한다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아니었으면 그 중압감을 견디기 쉽지는 않았으리다.

하얏트 호텔


객실 풍경. 스탠드도 직접 가져 옴.



예민한 사람들은 1인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2인 1실을 사용했는데 나는 제일 친했던 형과 함께 방을 썼다. 수의사로서 국가고시 경험이 있는 형의 조언을 많이 따랐고 형이 일어나지 않으면 나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각오로 정말 밥만 먹고 책만 봤다. 하얏트 호텔 아이스링크에서는 한창 프로포즈가 진행 중이었는데 구경할 시간에 차라리 하나라도 더 외우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실함이 컸다.

아내의 100일 선물


수험기간 아내가 싸준 도시락 중 일부



호텔에서의 2박 3일은 금방 지나갔고 밤에 반짝반짝 빛나던 아름다운 야경과 그것을 마음 편하게 즐기지 못한 아쉬움이 가슴 한 켠에 남았다. 다음 번 여기 올 때는 내 손에 스탠드가 아니라 아내의 손을 잡고 오리라 다짐했다. 마지막 날 아침을 간단히 먹고 다같이 버스를 타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그날은 유난히 추웠던 것 같다. 점심시간에 도시락 받으러 줄을 섰는데 엄청나게 떨었던 기억이 난다. 시험지를 받았는데 너무 긴장을 했는지 말그대로 검정색은 글씨요 하얀색은 종이로다였다. 애매한 문제 투성이었고 나의 무의식을 믿으며 소심하게 답을 적어 나갔는데, 이게 아차하면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시험이 끝나고 나서도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고 바로 집으로 가지 못하고 아내가 있던 산후조리원으로 갔는데, 만약이라는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모른다. 합격자 발표가 있기 전까지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다. 사실 육아로 정신이 없어 거의 혼이 나간 상태로 지냈다는게 맞겠다. 육아는 쉽지 않아~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그 어느 때보다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 버튼을 클릭했고, 아내는 기쁨의 눈물을 한없이 흘렸다. 진정 노력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는 뜨거운 눈물이 내 두 눈에서도 흘러내렸다.

정말 힘든 기간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힘든 시기에 함께 해 준...나의 가장 큰 힘이 되었던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