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담 ::/수련생활

[인턴일기] "자네 까칠하지?"

vegandent 2013. 11. 21. 20:39

 

장모님의 임플란트 개인트레이를 만들다가 문득 며칠전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병원에서 인턴을 하면 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교수님들께서 진료하실 때 옆에서 보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여러 교수님들의 다양한 진료 스타일을 볼 수 있고 훗날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진료를 할까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도 한다. 

 

여튼, 그 날은 매우 훌륭한 환자 매니지먼트로 유명하신 교수님의 진료를 볼 수 있는 날이었다. 가까이 서서 움직임 하나, 말씀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온갖 신경을 곤두세웠다.

 

"인상 뜨자."

 

인상은 환자의 구강 상태를 석고 모형으로 재현하기 위해 본을 뜨는 것을 말하는데, 재료를 물과 혼합하여 쫀득쪽득하게 만든 후 틀에 꾹꾹 눌러 담아왔다. 교수님께서는 내가 가져다드린 틀을 환자의 구강 내에 넣으시고는 뜬금없이 한마디 하셨다.

 

"자네 까칠하지?"

 

엥?? 까칠하다니?? 당황스러웠다...무슨 의미지?

 

"저..무슨 말씀인지...잘...."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화끈거리는 얼굴을 애써 감추며 말끝을 흐렸다. 교수님께서는 옆에 있는 전공의를 향해 말씀을 이어가셨다.

 

"저 친구 까칠하지? 아냐? 아직은 그럴 수가 없겠구나. 하지만 시간이 흘러봐봐. 저 친구 엄청 까칠해."

 

'사람을 대하는데 정통하신 분이라 상대방을 보고 순식간에 성향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셔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내 인상이 너무 굳어 있었나? 인상재를 너무 깔끔떨면서 담아 왔나? 아니지...깐깐하다는 표현을 까칠하다로 잘못하신 거겠지?'

 

까칠하다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결코 긍정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자꾸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고 집에 돌아가서는 아내에게도 내가 까칠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엄밀히 말하면 "까칠"하지는 않은데 고집 같은 뭐 그런게 있단다. 감이 잘 오지 않아 예시라도 들어보랬더니, 내가 생각했던 '나이만 먹고 똥고집만 는 사람'은 아니었다. 자기 신념을 가지고 그것이 옳다면 흔들리지 않고 고수하는 자세는 바람직한 것 아닌가? (잘난척~)

 

훗날 진료할 때도 온갖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치료하는 그런 "까칠한" 사람이 되고 싶다.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