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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 육식주의(carnism) 까발리기

vegandent 2013. 11. 23. 10:01



흥미로운 제목의 책이다. 질문형이라 자동적으로 나름의 답을 떠올렸다. 하지만 명쾌한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궁색한 변명처럼 겨우 떠올린 것은 '원래부터 그랬으니까...' 정도? 나의 대답과 비슷한 답을 떠올린 사람은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육식주의(carnism)'라는 일종의 폭력적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로 살아왔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육식주의(carnism)는 저자 멜라니 조이가 새롭게 만든 단어인데, 한국에서는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우스갯소리로 육식주의라고도 하기 때문에 완전히 생소한 말은 아니다. 하지만 개념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육식주의의 정확한 뜻을 짚고가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뜻을 잘못 이해하여 '나는 고기뿐만 아니라 야채도 먹는 잡식주의인걸?' 식의 주장이 나오는 것을 방지하고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육식주의(carnsim)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육식주의(Carnism): 특정 동물들을 먹는 일이 윤리적이며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신념체계


즉, 자신의 소비 행위와 신념이 분리되어 단순히 생물학적 특징만 기술한 'meat eater'와는 다르다. 채식주의자가 단순히 동물을 먹지 않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신념에 바탕을 둔 '행동양식'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들 알겠지만 '~주의'라는 접미사가 붙으면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뜻하는데, 이데올로기란 공유된 신념들이자 그 신념을 반영하는 실천이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를 신을까>를 통해 저자 멜라니 조이는 육식주의를 철저하게 파헤친다.


육식주의를 정의한 것은 이 책의 핵심이고 가장 큰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라고 지적했듯이,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면 의문이나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매우 비슷해 보인다고 하지만, 새로운 용어를 정립함으로써 지금까지 그 모습을 숨겨왔던 폭력적 이데올로기를 해부할 수 있게 되었다. '비가시성'과 '정신적 마비'는 모든 폭력적 이데올로기가 그러하듯 그것이 존속할 수 있는 방어기제의 핵심인데,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육식주의를 존속시켜 왔는지 그리고 우리가 육식주의 시스템 내에서 실상을 '모르면서 아는 척'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회피와 부정이라는 방어기제에 바탕을 둔 비가시성(invisibility)은 사회적, 심리적인 부분과 물리적인 부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간략히 언급만 하자면, 이름 자체가 없어 그런 이데올로기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도록 하는 것, 쇠고기나 돼지고기 등을 먹으면서 해당 동물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는 심리적 방어, 미국에서만 도살되는 동물이 매년 100억 마리나 되지만 식육의 생산 과정을 일부분이라도 본 적이 없는 물리적 방패 등이 있다.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거대 식육 산업이 그토록 은폐하려고 했던 실태의 일부를 엿볼 수 있게 되었고 비가시성이 벗겨지면서 육식주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근거가 없는지 따질 수 있게 되었다.


정신적 마비의 메커니즘은 부정, 회피, 일상화, 정당화, 대상화, 몰개성화, 이분화, 합리화, 해리 등을 포함한다. 부정과 회피는 앞서 언급했고 정당화는 육식이 정상이며(normal), 자연스럽고(natural), 필요하다(necessary)하다는 3N과 관련이 있다. 3N의 본질적인 임무는 동물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행동에 내재하는 모순을 감추고 우리가 어쩌다 그걸 알아채게 되면 그럴싸하게 해명하고 넘어가는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눈가리개 역할이다. 아프리카인은 '원래' 노예에 적합하다느니, 유대인은 '천성적으로' 사악하기 때문에 발멸하지 않으면 독일을 파괴할 거라느니, 여자는 '본래부터' 남자의 소유물로 만들어졌다느니 하는 믿음도 3N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틀을 부수고 나오면 얼마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 수 있지만, 시스템 내에 속해 있을 때는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기가 어렵다.


정신적 마비는 계속 이어져 동물을 물건으로 보는 '대상화(objectification)'와 동물을 추상적으로 보는 '몰개성화' 그리고 동물을 범주로 가르는 '이분화'인 인식의 트리오를 통해 돼지나 닭을 보면 쾌락과 고통을 하는 개성을 가진 생명체가 아니라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법적으로 동물은 재산으로 분류되어 어떻게 대하든 상관이 없다는 점도 정당화에 힘을 부여한다. 그리고 전문직업인은 이런 폭력적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들은 해당 이데올로기가 내세우는 신조의 틀을 짜는 방법, '합리적 온건주의자'로 행동하는 방법, 체제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을 환자로 취급하거나 방해하는 방법을 택한다. 쉬운 예로 공장식 농장의 여러 관행에는 반대하면서도 일상적으로 육식을 하는 수의사나 숱한 반대증거에도 불구하고 육류가 빠진 식사는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의사들이 있다. 권위에 대한 무분별한 존경은 진실의 가장 큰 적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3장의 진짜 현실은 어떠한가에서 공장식 축산(CAFO, Concentrated Animal Feeding Operations)이 어떻게 소, 돼지, 닭 등을 기르고 가공하는지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너무 끔찍해서 생각만해도 소름이 돋았다. 공장식 축산이 추구하는 것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수익을 내는 것이기 때문에 식육 생산은 굉장히 비인도적인 관행을 만들었다. 동물의 복지 뿐만 아니라 근무자의 안전한 근로 환경조차 비용 때문에 무시되는 것이 다반사이다. 돼지, 소, 닭 등이 진열대에 상품으로써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생략하도록 한다. <MBC스페셜 고기랩소디>나 <푸드 주식회사>처럼 그런 실태를 다룬 다큐멘터리나 영화는 많이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찾아서 보시도록. 참고로 "Earthlings"라는 작품도 매우 충격적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차마 보지는 못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기 전과 후에도 세상은 늘 같은 방식으로 돌고, 식탁에 올려진 고기는 내가 고기왕이었을 때나 채식주의자로 바뀌었을 때나 같은 고기겠지만 그것을 대하는 것이 180도 바뀐 것은 세상과 소통하는 나의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글을 마무리 지을지 몰라서 심리학자들이 '확증편향'이라고도 한 '톨스토이 신드롬'을 소개하는 것으로 내가 전하고 싶은 마지막 뜻을 전한다.


<톨스토이 신드롬>

내가 알기로 대부분의 사람은-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쉽게 이해할 만큼 지력이 뛰어난 사람들조차-가장 단순하고 명백한 진실이라도 그것이...그가 자기 삶의 피륙에 한 올 한 올 짜넣은 결론들을 오류로 인정하게 만드는 것일 경우...진실로 받아들이는 수가 거의 없다.


미각이란 게 대체로 문화를 통해 습득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기호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거기서 벗어난 것은 불쾌하고 혐오스럽게 여긴다. - pg.19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동물의 선별에서 놀라운 점은 혐오감의 존재가 아니라 그 부재(不在)다. - pg.21

우리가 보통 또는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다수의 신념과 행동양식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이르는 바 주류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 pg.38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는 언젠가 도축장의 벽이 유리로 되어 있다면 모든 사람이 채식주의자가 될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 pg.95

이처럼 우리가 어느 수준에서는 불편한 진실을 의식하지만 동시에 다른 수준에서는 의식을 못하는 일이 가능할 뿐 아니라 불가피하도록 조직되어 있는 게 바로 폭력적 이데올로기다. '알지 못하면서 아는' 이 같은 현상은 모든 폭력적 이데올로기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 pg.96

우리가 진짜 현실은 어떠한지를 알게 될 때, 그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인식할 때, 오직 그때에만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해진다. - pg.97

경제학자들은 어떤 산업이든 상위 4개 이하의 회사가 해당 시장 거래액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집중률을 보일 경우 시장의 경쟁도가 낮아져 심각한 문제들이-특히 소비자 보호 분야에서-발생한다고 경고한다. - pg.120

모든 암과 심혈관 질환, 기타 퇴행성 질환의 대부분, 아마도 80% 내지 90%는, 적어도 아주 고령이 될 때까지는 단순히 식물 위주의 식사를 함으로써 예방할 수 있다. - T. 콜린 캠밸

권위에 대한 복종은 인간의 양심에 우선한다. - pg. 138

미디어가 육식주의의 비가시성을 지켜 주는 방법이 '생략'과 '금지'이다. - pg.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