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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디스크 이겨내기] 나 때문에 엉망이 된 가족 분위기

vegandent 2014. 1. 9. 12:04
두 차례에 걸친 epidural block, 물리치료, 허리 찜질, 수영, 허리에 좋다는 스트레칭에도 불구하고 허리디스크는 별다른 호전 증상이 보이지 않았고 나의 조바심은 점점 커져만 갔다.

'왜 좋아지지 않지? 이러다 정말 허리디스크 수술하는 건 아닐까?'

'너무 아픈데 그냥 수술 확 해버릴까?'

'하지만 수술해도 재발이 쉽고 잘못하면 불구가 될 수도 있는데, 아직 보존적인 치료와 병행하여 충분히 쉬어보지고 못하고 최후의 수단을 선택하는 건 서두르는 감이 있잖아!'

'휴학을 할까? 아니, 지금껏 버틴 것처럼 참으며 계속 학교를 다닐까? 그러다 갑자기 허리디스크가 터져 응급 상황에 부딪히면 어쩌지?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평생 후유증이 남는다던데...'

'휴학을 하면 다시 3학년 처음 폴리클부터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고생한 것, 시간, 돈이 아까워 어떡하지?'

'아니야, 인생 길게 봐야지. 평생 치과의사 하려면 이번 기회에 푹 쉬고 건강을 찾아야지, 1~2년 아깝다고 미련하게 다니다 일이 커져 큰 수술하면 어쩌려고 그래!'

등등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중심에 딱 잡혀 있다면 크게 고민할 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 나는 이것도 저것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쟁이였다. 게다가 증상이 심해지고 있으니 내 마음은 더욱 무거웠다.

Epidural block 후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아버지께 연락이 왔다. 내 MRI 사진을 동료 정형외과 의사, 신경외과 의사, 대학교수로 있는 후배 등 지인에게 보여줬는데 하나 같이 결론은 수술이라고 했다. 직접 증상을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하여 경상대학교 척추클리닉에 있는 교수를 만나러 갔다.

간단한 문진과 앞서 말했던 발 올리기 검사와 발가락 힘 검사를 한 후 수술로 결론이 났다. 최소 침습법인 내시경으로 하는 수술은 각도가 나오지 않아 힘들고 현미경 수술은 가능하다고 했다. 그때부터 아버지께서는 그동안 알아보신 수술법에 대해서만 계속 확인을 하셨는데, 말이 상당히 느리면서도 절대 중간에 끊이지 않는 편이라 끼어들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보존적인 치료를 받고 쉬었어야 하는데 계속 높은 강도로 쉬지 않고 일을 했기 때문에 많이 심해진 것이니 좀 쉬면서 경과를 지켜보는 것은 어떤지 의견이 궁금했는데, 교수는 수술 여부 결정되면 방법에 대해서는 후에 논의하자며 아버지의 말을 끊으며 다음 환자를 불러 들였다. 상당히 불쾌한 경험이었다. 수술이 결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방법에 대해 오래 문의하니 그런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난 정작 궁금한 것은 못 물어봤는데!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거 아닌가? 내가 말동무가 없어 의사 선생님 붙들고 넋두리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환자의 말에 관심 같지 않는 의사라면 됐다는 생각에 방에서 나와버렸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집에서 터졌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가족이 모여 의논하는 자리에서 말이다. 경상대학교병원 교수의 말까지 들으니 아버지께서는 이미 수술하는 것으로 결정하신 듯 보였다. 사실 수술을 나에게 "강요"하신 건 아니었지만, 정형외과, 신경외과, 영상의학과, 대학 교수의 소견을 당신에게 유리하게 재해석하여 주장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이 나는 못마땅했고, 수술은 절대 반대라는 어머니께서 뭐라고 하시면 "전문가"도 아니면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좀 가만히 있어라고 역정을 내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결국 폭발했다.

"아무리 MRI가 많은 것을 알려주지만 결정을 내리기 전에 직접 환자를 보고 증상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정상 아닌가요? 아버지가 소위 "전문가 의견"이라는 것 중 실제로 저와 만나 직접 확인하고 이야기를 듣고 결정된 것이 얼마나 있어요? 제말 듣지도 않고 나온 대학 교수의 의견은 제외하더라도 정형외과 의사 말고는 없잖아요! 심지어 정형외과 의사도 아버지를 통해 허리 주사가 별 효과가 없었다는 이야기만 듣고 얘기한 거잖아요. 상식적으로는 보존적인 치료를 받으며 충분히 쉬고 허리 강화 운동을 병행하며 조심스럽게 예후를 지켜볼 것이라고 의사가 기대하지 않겠어요? 그래도 악화되면 수술을 하는 것이구요. 저는 "쉬지를" 못했다구요!!! 오히여 강도 높게 계속 학교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더 심해진 것인데, 만약 제가 시술을 받고 충분히 쉬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고 의사들의 견해도 변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 저는 8월은 그냥 학교 안 나가고 쉴 거에요. 제 입을 통한 지금까지의 상태나 증상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의사들의 의견을 자꾸 아버지 의견을 뒷받침하는데 끌어들이지 마시라구요. 뒷받침하는 근거도 적합하지 않고, 디스크에 관해서는 아버지께서도 소위 "전문가"가 아니면서 왜 어머니의 의견을 그렇게 무시하세요! 하나만 여쭤볼게요. 아버지께서는 수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최후의 수단으로써 선택되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다르게 본다. 수술은 불가피하지만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epidural block 같은 것을 한 것이지 근본적인 치료는 안 된다는 걸로 나는 받아들였다."

"아니, 근본적인 치료가 아니라는 건 저도 안다구요. 하지만 수술은 최후의 수단으로 하는 거잖아요. 근데 쉬면서 나아지면 그렇게 관리하며 지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전 아직 쉴 기회가 없었다구요. 그리고 왜 저를 무슨 일반 환자 대하는 것처럼 그러세요? 수술하자는 말이 그렇게 나오세요?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내시경인가 뭔가 그건 안된다면서요. 제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뭔지 귀를 좀 기울여주세요!!"

울화가 터지고 하도 답답하고 악이 받쳐 눈물이 줄줄 흐르는 상태로 목청껏 소리쳤다. 아버지께서도 화가 나셔서 되받아치셨고 나가라는 말씀에 집에 있으면 나도 미쳐버릴 것 같아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버지께서도 분명 나를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시고 고생하셨겠지만, 정작 서운하고 아쉬웠던 것은 제대로 된 의사소통의 부재였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나 때문에 집안이 엉망이 되는 꼴을 보니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어차피 대화가 통하지 않는구나. 이제 모든 건 내 뜻대로 내가 결정해야겠다. 이제 이런 중대한 일을 논의하나 봐라. ' 속으로 생각했다.

가족 분위기를 그렇게 만들어 놓고 나는 다음날 아침 일찍 광주로 돌아왔다. 8월은 무조건 쉬기로 결정하고 교수님께 말씀드릴 작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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